그렇게 달고 맛있었다고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악어 등껍질처럼 우둘툴툴한 노란 껍질 속에 빨간 속살이 드러나는 꽤 매력적인 '과일'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살 때 시장에 여주가 많이 나와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당뇨병환자가 많은데

여주는 당뇨병에 특효약으로 믿어지고 있었습니다.

익지 않은 푸른 여주, bitter melon은

우려내지 않은 씀바귀, 머위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쓴 '야채'였습니다.

그런데 옆집의 샬민네 엄마는 여주로 요리를 잘 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샬민네 엄마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우둘툴툴한 껍질이 어디갔는지

초록색이 짙은, 쓴 맛, 단 맛, 짠 맛, 매콤한 맛....

세상의 맛들이 한데 어우러진 오묘한 반찬을 해 주었었습니다.

집 주변의 일반적인 미국마트에서 bitter melon을 쉽게 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마트에 가면, 꼭 장 보는 서남아인, 동남아인,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고

또 여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 장을 보면서 무턱대고 여주를 샀습니다.

불안하니까, 손바닥 만한 거 딱 세 개.

직접 요리해 본 적은 없고, 얻어 먹어만 봤으면서

쓴 거 잘 먹었던 기억으로 쓴 거 데쳐서 우려낼 생각도 않고

과감하게 요리를 했습니다. 큐민도 넣고, 생강도 넣고, 나름 인도의 냄새가 풍기게...

제게 잡히기 전 bitter melon의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그랬나봅니다.

완전, 대. 실. 패.

마지막 수단으로 설탕까지 한 숟갈 넣었음에도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썼습니다.

어쩌면 설탕을 넣어서 쓴 맛이 더 강해진 걸지도 모르지요.

손에는 여주씨만 남았습니다.

예전에 동대문에서 파는 걸 보니 여주씨 하나에 몇백원인가 천원인가 하더군요.

조롱박과 함께 여주, 아주 비싼 씨다, 생각했었는데

손에 덜 여문 여주씨만 잔뜩 남고 보니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숙성좀 될까 해서 햇빛아래서 말리고 있는데

내년에 심어봐서 여주가 혹시나 자라면

그땐 정말 좋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슨, 정석가도 아니고....ㅡ_ㅡ;;

구운 밤 닷되를 심고 싹이 나기를 바라는 아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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