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사지(淸平寺址)와 절 주변

청평사지(淸平寺址)

강원도 문화재 55호

 

청평사는 고려 973년(광종 24)에 영현 선사가 백암선원으로 창건하였고, 1068년(문종 22) 춘주도감창사였던 이의가 보현원으로 중건하였다. 대약서승의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이자현(李資玄)이 1089년 (선종 6)에 세 번째 중건을 하여 문수원(文殊院)이라 하였다. 조선 명종때 보우선사가 크게 중건하면서 청평사라고 개칭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조선시대 산사의 대표적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보 제 115호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과 암자, 대감국사 탄연이 쓴 문수원기(文殊院記)와 이암이 쓴 장경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현재의 건물들은 근래에 신축한 것이다. 다만 보물 제 164호로 지정된 회전문과 돌 축대만이 옛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영지(影池)와 여러개의 폭포, 거북바위 등을 연결하여 절 주변을 자연 그대로의 정원으로 꾸며, 고려시대의 독측한 정원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 사찰은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사불교와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로 연결되는 간화선을 증흥시킨 본거지가 되었다. 예종과 인종 등 왕실에서는 이 곳에서 수행하던 이자현 거사에게 어러차례 향과 의복을 보내왔다. 나옹화사이 오랫동안 수행하였고, 원나라에서 보낸 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김시습이 서향원을 짓고 은거하기도 하였다.

문화재로는 3층 석탑(일명 공주탑), 8개의 암자터, 환적당 등의 부도 4기, 바위에 새긴 글씨들이 여러곳에 남아 있다.(청평사지 안내문)

 

진락공 이자현 부도(眞樂公 李資玄浮屠)

 

부도는 고승이 죽으면 화장하여 나온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석조구조물이다. 이 부도는 청평사에 들어와 도를 닦았던 고려시대의 뛰어난 학자인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의 것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자현의 호는 식암(息庵) 또는 희이자(希夷子)였는데, 인품이 뛰어났던 그를 흠모한 고려의 인종은 그가 세상을 떠나자 진락(眞樂)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 부도의 양식은 팔각원당형이고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가 180cm이다.

영지 건너편에 있는 이자현부도를 둘러싼 담장

이자현 부도

 부도 옆...각산당 석진 대화상과 관련한 탑하나...

 각산당 석진 대화상지비 - 청평사와 관련한 고승을 기리기 위한 비 같다.

 

청평사 영지(淸平寺 影池)

 

이 못은 오봉산의 옛 이름인 경운산이 물 위에 그림자처럼 떠오른다고 해서 영지라 불리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정원은 최소한의 인공만을 가하여 자연의 멋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주위의 경관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이 못은 청평사에 은거하면서 평생을 보낸 이자현이 만든 정원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사다리꼴 모양의 못 안에는 3개의 큰 돌을 배치하여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변화감을 더하여 주고 있다.

이곳의 정원은 청평사 입구의 구성폭포 아래의 거북바위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절 뒷편인 청평선동 계곡까지 약 1km에 이어지며, 영지는 그 중심에 위치한다.

영지 전경 - 못 안의 3개의 돌이 보인다.

영지가 있는 부지와 영지 전경

 영지

 

진락공 중수 문수원비

 

1985년 사역을 정비할 때 능인전지 주변에서는 <문수원중수비편(文殊院重修碑片)>이 발견되었다. 이 비()는 원래 회전문의 앞쪽 서편에 있던 것을 1914년 극락보전에 옮겼다고 하는데 이때 이미 보존상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949년 극락전이 소실되어 다시 능인보전으로 옮겨 보관하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능인전도 재난을 당하여 매몰되었다. 1968년 황수영, 문명대, 신영훈씨가 이 비편을 수습하였는데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다음은 복원한 비 옆의 요약문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 비석은 본래 고려 인종 8년(1130)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풍화와 전란으로 파손되어 없어졌던 것을 일부 비편과 탁본 문헌 사진 등 단편적인 자료를 토대로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다. 고려 중기 귀족가문이자 세도가의 일원이었던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들어와 절 이름을 문수원으로 바꾼 뒤 37년 동안 수향하다 일생을 바쳤다. 이 비문은 화두를 통해 깨달으을 얻으려는 간화선과 통일신라 말기에 형성된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산문의 계승, 그리고 초야에 묻혀 불교에 심취하던 거사불교 등 고려 중후기의 불교사를 엿볼 수 있다. 비성의 앞면은 청평사의 창건과 중창, 진락공 이자헌의 행적 등에 관한 내용으로 고려 중기의 문장가 김부철이 지었다. 뒷면은 그를 추모하는 제문으로 대각국사 의천의 제자 혜소가 지었다. 글씨를 쓴 대각국사 탄연은 심품사현 중의 한 분으로 우리나라 서예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왕희지 서체에 능통한 탄연의 글씨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진락공 중수 문수원비

진락공 중수 문수원비  옆 요약문

 

절 입구의 보호수 은행나무 - 수령 250년 높이 17m

 청평사 극락보전 우측의 보호수들 - 그 중 앞의 나무가 도나무라고 한다. 수령 800년 높이 10m

극락보전 처마에 달린 풍경..풍경 종 안에 뭔가가 적혀있다.

청평사 경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옛 유구들...

회전문 앞 뜰이나 주변 축대 주변에 옛 청평사지에서 발견된 유구들인듯 한 것들을 갖다 놓았다.

대웅전 앞의 유구...

대웅전 좌측에 있는 어느 공덕비...

여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유품이나 지방을 태우는 곳...

절 입구로 들어서는 다리

다리를 건너자 마자 보이는 약수 - 장수샘^^

샘에서 보이는 다리


꼬마 니콜라 엔젤아이 백씨네박씨네 손끝으로 만드는 행복 와이에이치j21 내 손으로 만드는 인형 칼리스타 구두패션연구소 건축의 끝 사탕베게와구름솜
이 글의 관련글
2주간 인기글
  • 기장흙시루 야생화농장(HitPoint : 343point)
  • 진주 수목원(HitPoint : 209point)
  • 홍성초 들꽃 도감(HitPoint : 172point)
  • 트랙백 주소 :: http://gapyeongwildgarden.co.kr/trackback/115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