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아침, 태극기 휘날리게 하고 아들은 영어학원으로 가서 열공하는동안 우린 남한산성을 한바퀴 완전히 돌기로 했다. 처음이다. 남문이나 서문에서 출발하면 중도포기하기쉬워 아예 따로 떨어진 동문주차장에 세웠다. 3시간이 조금 넘는 코스.

 복정쯤 오다가  딸이 양말에 운동화가 아닌 샌들을 신고온걸 보고 호되게 야단을 쳤다. 며칠전 일요일에도 남한산성에 왔는데 그때도 샌들을 신어 넘어지고 긁히고 하더니 또 깜빡한 것이다. '말로 해서 안되면 몸으로 느끼라. 넌 오늘 고생을 단단히 해봐야 다신 실수를 안하리라.' 하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계부나 계모쯤으로 여기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조잘조잘거리기를 잘하는 딸은 코스 반정도인 서문에 가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줄때까지 한마디도 하지않고 따라왔다. 뭔가 단 것이 입으로 들어가니 요즘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Where the red fern grows'에 나오는 붉은 고사리(red fern)를 찾아보자고 한다. '아이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왜 있겠니? 그리고 그건 그나라에서나 신성시되는 풀인데.......'어떨땐 정신연령이 유치원수준이다.

 동문에서 북문사이, 남문에서 동문사이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다. 아마 스무번쯤은 와보았을 나도 첨이니까. 하지만 한적하고 경사가 있어 제법 등산하는 맛이 나는 구간이기도 하며 경치도 못지않았다. 지난 추석때 차로 장경사까지 와 보름달을 보았던 곳도 지났다. 가을만 되어보라지 여기와서 또 감국을 한아름  따 가서 차를 만들어야지.......

 북문에서 사과반개씩을 베어물고 더욱 잘 정비된 산성구간을 탄다. 처음 이 곳에 와봤을 시기인 아들이 네다섯살때만해도 여긴 도로도 교행이 되질않았고 식당도 몇 집되지않았으며 그 유명한 오리탕도 집에서 기르던 것이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왕복 2차선도로에 넘쳐나는 수요에 냉동오리를 쓰겠지. 송파신도시가 들어서면 이 곳은 지금보다 더 북적대겠다. 마치 동네 뒷산처럼. 

 남한산성은 소나무가 아주 좋은 곳이다. 많은 구간에서 소나무를 제외한 잡목들을 베어내고 아예 송림만으로 조성되고 있었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의 그늘에서는 절대 기를 못 편다고 한다. 공기도 상큼하고 보기 좋았다. 광릉에서 배운 극상림층 나무인 서어나무도 여기에는 꽤 많다. 그만큼 숲이 오래되었다는 증거.

 수어장대는 며칠 전 보았으므로 오늘은 지나친다. 딸이 다리가 아프다느니, 덥다느니 칭얼거려도 '넌 당연히 오늘 충분히 아파야 돼.'라며 쐐기를 박아버린다.

 남문을 지나 소나기가 잠깐 왔다 지나간다. 그곳부터 동문에 이르는 산성은 많은 곳이 무너져 청테이프위에 번호가 매겨진채 보수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징글맞게도 내렸던 비때문이다. 새로 복원된 옹성도 있다. 내려올 때 버려진 페트병 몇개를 주어 내려오는 '선택적 애국자'인 남편눈에 지폐가 띄어 채은이의 수고비로 전달되었다. 희색이 만연! 맘속으로는 나에게 혓바닥이라도 내밀었을게다.

 12시쯤에 산성을 내려오는데 반대차선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수많은 차들.산성네거리부터 신흥동까지 좌회전 신호대기를 하고 있으니 신호가 아마 10번도 더 바뀌어 산으로 올라갈 수 있을듯. 올라가더라도 주차나 제대로 하실런지.모름지기 수도권에서는 '일찍 나는 새가 항상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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