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득 퍼진 구름에

가뜩이나 여린 이월의 햇살이

 모두 스며들어 버리고 

지상엔 엷은 잿빛 정적만 가득했다.

 

작은 섬들에 둘러싸인 연안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고

칠천도의 호젓한 해안도로는 정적에 휩싸인 채

꿈 같은 풍경을 펼쳐냈다.

 

  야트막한 언덕 기슭, 대나무 숲을 두르고 있는

작고 소박한 교회가 눈길을 끌었다.

 

 

 

 

 

 

 

 

작은 포구의 선착장에 잠시 차를 대었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떠나왔건만

한나절 내내 소리 없는 풍경 속으로만 다니다 보니

지도의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 듯 고적해 져서

다시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다.

 

 


 

 

 

 

 

가파른 해안으로 밀려드는 나직한 물결소리

찰싹찰싹찰싹~

느린 리듬의 자장가 같은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멀리서 오고 있는 봄과

내 마음에 기쁨의 꽃다발을 얹어 주는

그립고 사랑스러운 이들을 생각했다.

 

 

 

 

 


아마 배를 수리하는 곳인지..

 

그곳은 작은 포구인데도

배를 들어올릴 수 있는 기중기가 있었다.

 

작고 어리고 연약한 것은 늘 내 마음을 붙든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아니건만,

엎어져 있는 작은 보트가 어린애처럼 사랑스러워서

난 자꾸 그 곁을 서성이게 되었다.

 

 

 

 

 

 

 

 

가까이 있어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연인처럼,

바다는 제 깊이를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청록빛으로

잠잠히 일렁이고 있었다.

 

 

 

 

 

 

 

 

물주름 지는 수면 위로

길을 잘못 든 갈매기 몇 마리

아득히 날아갔다 되돌아 오고

마음엔 푸르고 맑은 고독이 차올랐다.

 

 

 

 

 

 

 

 

바람 부는 세상을 이렇게 걷고 걷노라면

마침내 어느 적멸의 언저리에서

환한 사랑 하나 가슴에 받쳐들 수 있으려는지..

 

 

 

 

 

 

 


 

한 번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아니 어쩌면 아직도 당도하지 않은,

모든 그리움을 향하여 길을 달린다.

 

솔숲에 감싸인 작은 언덕을 넘고

적막한 해안길을 지나

희망의 초록빛 등대를 만난 후

다시 큰 섬으로 이어지는

바다 위의 다리를 건넜다.

 

 

 

 

 

 

 

거제 본섬에 들어선 다음에는

1018번 지방도롤 따라 가다가

장목만의 서쪽 어귀에 세워진

장문포 왜성을 향해 큰 길을 벗어났다. 

 

 


 

 

장문포 왜성의 입구는 꽤나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었는데

중간에 제법 크게 턱이 져 있어 조심조심 올라야 했고,

그나마 조금 더 달리니 포장도로가 끝나고

잔돌이 깔린 비포장길로 바뀌었다.

 

 

 

 

 

 

 

 

예전에 이곳에 쳐들어 왔던 일본인들은

장목만의 서쪽에는 장문포 왜성,

맞은편인 동쪽에는 송진포 왜성을 세워

거점을 확보하고

장목만 입구를 방어하려고 했던가 보다.

 

 

 

 

 

장문포 왜성은

해발 107m 되는 산의 정상부에 세워진 일본식 성곽으로서,

1593년 경에 왜장 후쿠시마 등 7,430명이

성을 쌓고 이곳에 주둔하였다고 한다.

 

현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27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직접 돌아보니 훼손된 정도가 무척 심했다.

 

성곽 앞에 붙어 있는 설명문에 따르면,

이 왜성은 산의 정상과 능선의 두 군데를 잘라

땅을 평평하게 고른 후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동쪽과 북쪽의 바닷가에서도 석축이 확인되며,
아직 남아 있는 성벽은

둘레 710m, 높이 3.5m, 너비 3.5m 정도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1594년 9월 29일에 배를 내어

장문포 앞 바다에 돌입했으나

왜적이 깊이 숨어 나오지 않았고,

양쪽 봉우리에 누각을 높이 세운 성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이런 왜성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기장 죽성리에도,

조금 떨어진 서생포에도,

왜성의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왜적이 침략하여 그렇게 성을 쌓고 주둔하기까지

우리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런지 짐작이 되어

뼈아픈 심정이 된다.

 

 

 

 

 

 

 

 

장문포 왜성은 내가 본 어떤 왜성보다도

훼손된 정도가 더 심했다.

 

시간에 먹혀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역사의 흔적을 바라보는 마음은

애틋하기도 착잡하기도 했다.

 

 

 

 

 

 

 

 

비록 아픈 역사이긴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는 이슬람의 흔적, 알함브라 궁전처럼

역사의 유적은 또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성벽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왜성의 성벽은 우리나라 성벽과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성벽은 네모지게 다듬은 큼직한 돌들을

수직으로 착착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왜성은 갖가지 크기의 돌들을 함께 써서 비스듬한 각도로 쌓았다.

그래도 성벽의 모서리 부분은 매끈한 각을 이루게끔 다듬어져 있었다.

 

왜성의 더 두텁고 투박하고 덜 다듬어진 이런 모양새는

전반적인 한, 일간의 조형미와는 반대되는 것 같다.

아마 군사용 진지로 급히 쌓아 올리느라고 그랬는지,

조선과 일본의 축성법이 본래 다른지는 따로 알아 봐야겠다.

 

 

 

 

 

 

 

 

방치된 채 무너져 가는 성벽에서

인간의 모든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리며

서서히 덮쳐오는 거대한 자연의 힘,

엔트로피의 법칙이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폐허 위에 어린 깊은 침묵과 고독에

어쩐지 마음이 끌려서

보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자꾸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장문포 왜성을 떠나오는 길목에서

마른 풀 너머로 내려다 보이던

잔잔한 에메랄드빛 바다

 

 

 

 

 

 

 

 

돌더미 무너져 가는 폐허에서

수백년의 허무에 닿았던 마음,

마른 풀을 스치는 바람처럼 쓸쓸해져서

죽음 너머까지 잔잔하고 아름다울 이 산과 바다를

적막하게, 그립게, 바라보았다. 

 

 

 

 

 

 

 

 

장목에서 황포로 가던 길 가 동백나무 가로수에는

선홍빛 동백 꽃망울이 수없이 벙그러져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월의 흐린 바다는

하루종일 햇빛을 품지 못한 채 저물어 가고

해쓱한 나뭇가지 바람에 쓸리는 황토 언덕 위에는

예배당 한 채 기도처럼 경건히 서있었다.

 

유호에 이르르자

부산에서부터 가덕도와 저도를 징검다리 삼아 연결되는

거대한 다리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공사 중인 이 다리만 완공되면

그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부산과 거제도가 곧장 연결된다.

참 마법 같고 꿈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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