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그리 열심히 공부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입에 실패한 후 집에서 일년간 농사일을 도우다 공부도 전혀 않고 대입에 재도전하다보니 마음에 드는 대학에 못간게 아마 가장 큰 이유였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당시 새에 관심이 많아 조류 도감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을 찾곤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보수동 책방 골목은 대단했었다.
어린애들의 그림책에서부터 중고등 학생의 교과서, 외국 서적, 고서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책은 취급 않는게 없었다. 골목길따라 헌책 가게가 수십개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부산 방문때마다 헌책방을 뒤져도 원하는 조류도감은 구할 수 없었다.
근년에 와서 몇개 출판사에서 도감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당시엔 생물 도감은 수요가 없다보니 출판사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고 정부(당시 문교부)에서 기획하여 연차적으로 출간하고 있었다.
출간되면 거의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곤 절판되니 구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때 조류 도감 찾으면서 구했던 책들 중에 화훼류 도감과 한국식물도감이 있다.
둘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 주고도 쉽게 못구하는 책이지만 정태현 교수가 쓰신 한국식물도감 하권 초본부는 우리나라말로 된 최초의 식물도감이 아닌가 생각되어 더욱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서문에 의하면 한국 전쟁 발발 직전에 원고가 탈고되었으나 전쟁통에 발간치 못하고 1955년에 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목은 하권이지만 책의 저자 서문에 보면 상권 목본편을 국역하여 장차 출간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있으니(목본편에 해당하는 책은 조선삼림식물도설이란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일본어로 출간된 적이 있다.) 이 책이 먼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수준 낮은 인쇄 기술로 인쇄 상태가 나쁘고 흑백 그림이지만 요즘 나온 컬러 사진을 사용한 도감들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정확하고 알찬 설명들이 들어있다.
요즘의 도감은 거개가 사진으로 되어 있지만 이 도감은 전적으로 육필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책을 내는데 얼마만한 노력이 들었겠는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나는 요즘도 애매한 식물을 동정하는데 이 도감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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