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기념물 제53호(양양군)양양선림원지(禪林院址)소개

 

선림원은 9세기경에 홍각선사가 지었다는 큰 절로 승려들이 수도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언제 불에 타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선림원지로 오르는 계단입구

 

1948년에 이곳에서 정원(貞元)20년 신라(新羅) 애장왕(哀莊王)5년(804) 명(銘)이 있는 동종(銅鐘)이 출토 된 바 있다.

 

 

 

 

 

 

 

 

 

 

 

 

 

 

 

 

 

 

 

 

 

 

선림원지

 

이 출토된 신라범종을 통해, 당시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順應法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선림원지 근경

 

지금은 이 터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고 각종 기와와 토기조각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보물  제444호 선림원지 삼층석탑

이 종은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로, 월정사에 옮겨 보관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 파편만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물  제445호 선림원지석등

남아있는 문화재로는 삼층석탑(보물 제444호)과 부도(보물 제447호), 석등(보물 제445호), 부도비(보물 제446호)들이 남아있다.

보물 제446호 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귀부및 이수)

 

 

 

 

 

 

 

 

 

 

 

 

 

 

 

 

 

 

보물  제447호 선림원지부도

 

 

***

 

아홉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하다는 구룡령정상휴게소에서 태백준령을 내려다 보는 것도 미시령이나 한계령, 대관령 못지 않게 아름답다.

 

 

 

 

 

 

 

 

 

 

 

 

 

 

 

 

 

  구룡령고개길


 

특히 고목나무위에 기생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마치 나무마다 까치집을 한 두 개씩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이하다.
                   

구룡령(해발 1,048m) 정상에서 양양으로 내려오는 고갯길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인 갈천리는 구룡령 바로 밑 첫 동네이다.


갈천(葛川)이라는 마을 이름은 칡뿌리에서 나왔다는데,  화전민이 주로 살았던 산골마을에서는 춘궁기가 되면 칡뿌리로 연명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오색약수와 함께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갈천약수는 그동안 찾아가기가 힘들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구룡령 갈천 약수     

  

갈천약수로 라면을 끓이면 라면특유의 냄새도 없어지고 면발은 더 이상 불지를 않고 쫄깃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아래 끝 동네는 곳 하늘아래 첫 동네가 되는 것이니,
이곳에 스님들의 수도처인 선림원지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휴양림내에는 불바라기 약수터와 토종벌보호역으로 지정된곳이 있어 문화유적 탐방과 자연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바라기 약수 안내판


불바라기 약수는 접근하기가 가장 어려운 절벽위에서 흐르고 있는게 특색인데 미천골 폭포의 암벽 중간에 있는의 작은 구멍에서 실오라기처럼 흘러 내리므로,  정말 받아 먹기가 힘들다. 

 


   미천골 불바라기 폭포와 약수

 

 

 

 

 

 

 

 

 

 

 

 


   불바라기 약수
                     
미천골이란 이름은 그 옛날 선림원에 수도하는 스님들이 많아 밥을 지을때 쌀씻은 떠물이 허였게 많이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미천골 토종벌통

 

계곡이 협소하고 인적이 드물게 보이니 어디서 그런 많은 쌀을 가져다가 씻을 수가 있었는지……

 

 

 

 

 

 

 

 

 

 

 

 

 


                        선림원지 계곡의 산천어

산비탈의 외딴 집에는 토종꿀 양봉통이 늘어서 있어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비경에 취해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하늘아래 첫 동네에 온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선림원지는 미천계곡이 맴돌아가는 한쪽편에 산비탈을 비집고 자리잡고 있다.

 

장소가 너무 좁아 사찰이 자리잡기에는 적당치 않지만 워낙 하늘아래 첫 동네인지라 달리 이보다 넓은 평지를 찾을 길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이 사찰은 선림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생들의 기도처인 사찰이 아니라 스님들의 수도처가 맞는 모양이다.    

      

선림원은 신라804년 숭응법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순응법사는 당나라 유학출신승려로 당나라에서 돌아와 가야산에서 초당을 짓고 은거 수도 하던 있었는데, 애장왕 왕비의 등창을 치료한 공로가 인정되어 왕의 하사금으로 해인사를 창건하고, 그 뒤 2년 후 여기에 선림원을 세우고 기도처로 삼은 것이다.


                                  미천골 상직폭포


1985년 동국대 발굴조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900년을 전후하여 어떤 시기에 대홍수나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사찰이 통째로  완전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치 성당이나 교회에 벼락이 떨어지듯이 하늘아래 첫 동네에 있던 이 사찰에도 천재는 일어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과연 그때 얼마나 많은 수도자들이 매몰됐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개울 이름이 米川골이라 불릴 정도로 수도승들의 쌀 씻는 떠물이 많이 흘렀다면 그 만큼 머무는 수도승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미천골의 큰 샘실폭포


또 해인사 같은 대사찰을 창건할 정도로 신라조정의 막대한 신임을 받은 순응법사가 창건한 수도원인데다가, 후에 홍각선사가 상주 했다면 “선사”라는 호칭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선종의 교세가 일취 월장하던 때 이고, 또 이곳이 전에 답사한 선종의 태생지인 진전사지와 가까워서 전국의 많은 선종구도자들이 그들의 수도
이념인 선종을 구도하려 가급적이면 진전사 근처로 몰려 왔을 것이라고 짐작 하기에 충분하다고 보면 수도승들의 희생이 대단 했을 것이다.


                                 미천골계곡


생각하면 참으로 애석하고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그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깨우치려 이런 깊은 산골 하늘 아래 첫 수도처에서 세상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오직 초근목피로 생명을 연명하면서 그토록 성불하기를 일념으로 용맹정진 하다가 하루 아침 찰라에 천당으로 가고 말았으니….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며 깊은 상념에 빠진다.


선림원 창건당시 범종하나를 만들었는 했는데, 산사태 때 땅속에 묻혀버렸고, 1948년 인근에서 숯을 굽던 사람들에 의해 완전한 상태로 출토 되었는데, 명문에 정원 20년(804ㅡ애장왕5년)
순응법사가 절을 지으면서 조성했다는 절대연대가 새겨져 있었다. 

발견된 범종을 돌볼 사람이 없는 이곳에 방치할 수는 없어,  오대산 월정사로 옮겨 놓았다.

 

 

 

 

 

 

 

 

 

 

 

 

 


               선림원지계곡


그 뒤 6.25 사변이 터지고 오대산은 치열한 전투지로 변하였고,
 인민군에 밀리던 국군이 퇴각하면서 월정사에 불을 질렀다.
그때 월정사는 폐허가 되었고 선림원의 범종은 불에 녹아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려 그 잔해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미천골 계곡(선림원지 계곡)


이것도 운명이런가?
차라리 발견되지 않고 그냥 땅속에 묻혀 있다가 지금쯤 발견되었더라면 얼마나 귀중한 존재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미천골 계곡(선림원지 계곡)


나는 이 범종이 자신의 몸을 불 태워 불시에 불의의 객이된 수많은 수도승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그 천여년이란 긴 세월을 땅속에 온전한 형태로 묻혀 있다가 시국이  어수선할 때, 그 것도 마치 불태워 질 것을 예상이나 한것처럼 하필이면 불태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숯굽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월정사란 대사찰과 함께 불길로 운명을 같이 했다면 그것이 어찌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고 말 것인가?

박물관에 있는 선림원지 동종의 잔해


산사태로 사찰이 매몰되는 순간 돌로 만든 구조물들도 대부분 파손되거나 손상을 입어 깊은 상차를 남기고 있거늘 하물며 동종이야!.....


그런데도 그 동종은 기적같이 멀쩡한 상태로 출토 되어, 온 몸에 새겨진 명문으로 이 선림원의 존재와 건립역사를 세상에 낱낱히 밝히고, 또 몸소 체험한 이 선림원의 비극을 알린 다음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존재를 거부하고 마치 스스로 동료 수도자들을 기리려 불구덩이에 들어가 산화하고 말았던 것이나 아닐까?


                                


                        미천골안 비포장도로


이런 호젓한 산속에서 그 옛날의 역사를 더듬으며 폐허가 된 폐사지를 찾아 답사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한 희열을 느끼는지 모른다.


어느날 오후 이곳 선림원지를 찾았을 때 탑 근처 빈터에 텐트를 치고 기거하고 있는 차림이 꽤재재한 사람을 보고 집사람과 나는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굿이 우리를 불러 임시로 마련한 탁자에 불러 앉히고는 차 한잔을 대접하겠다고 하는 것이 였다.


굿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마지못해 자리를 잡았더니, 양반이 대뜸 참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한 우리들에게 자기는 지금 2주째 여기서 노숙을 하고 있는 데, 처음에는 단순히 이 폐사지를 찾아 왔다가 너무나 선림원의 비극이 가슴을 짓눌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않아 이렇게 노숙을 하면서 자기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미천골 맑은 물로 차 한잔의 보시를 해야만 도리일 것 같아서 실천을 하고 있다며, 이제까지 부부가 같이 온 답사팀은 처음 본다면서 이제 자기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는 희생된 구도자들의 암시가 아니겠냐며 큰소리로 너털 웃음을 짓는 것이 였다.

 

나도 아내만 없었다면 그와 같이 여기서 하룻밤을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일어서고야 말았다.


이처럼 페사지를 찾아다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라도 할라 치면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공감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다가 보면 어느듯 시간이 많이 지나 , 다음 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추억과 인연 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등산 하다가 산중에서 만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유가 없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 무엇하러 이런 산속 외진 곳까지 힘들게 찾아 오겠는가? 


남이야 무엇이라고 하든 오직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와 만족을 위해서  그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 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폐사지 답사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정서를 공유하며 다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더군다나 이곳 선림원지와 이웃 양양에 있는 진전사지를 동시에 답사하면서 통일신라 불교가 화엄종에서 점차 선종으로 개화되는 과정을 감지할 수 있는 대표적인 폐사지 답사지로 손 꼽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보물  제444호 선림원지삼층석탑(禪林院址三層石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팔부중상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옥개석은 넓고, 받침은 각 층 5단이며, 추녀 밑은 수평이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쇠꼬챙이장식을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탑신...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이 각층 1석(石)씩으로, 1층 옥신은 높은 편인데, 네 우주가 있을 뿐 다른 장식은 없으며, 2층 이상도 같은 양식이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기단부...지대석은 6매의 판석으로 짜고, 하층기단중석은 각면 2매씩 8매의 큰 돌로 구성하고 있는 이중기단이다. 이층기단에는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여러 조각을 양각하였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보물  제445호 선림원지석등(禪林院址石燈)

 

선림원터 안의 서쪽 언덕 위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등이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식을 따르면서도 받침돌의 구성만은 매우 독특하여 눈길을 끈다.

 

 

 

 

 

 

 

 

 

 

 

 

 

 

 


 

옥개석 귀꽃


아래받침돌의 귀꽃조각은 앙증맞게 돌출되어 아름답고, 그 위로 가운데받침돌을 기둥처럼 세웠는데, 마치 서 있는 장고와 같은 모양이며 그 장식이 화려하다.

 

 

 

 

 

 

 

 

 

 

 

 

 

 

 

 

 

 

 

 

 

 

 

 

 

 

 

 

상반부...석등의 상반부는 하반부와는 달리 일반적인 모양의 화사석과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즉 기둥의 양끝에는 구름무늬띠를 두르고 홀쭉한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한 마디를 둔 후, 이 마디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꽃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3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하반부...하대석에서부터 상대석까지의 모양이 다른 석등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고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매우 독특하다.

화사석은 8각으로 빛이 새어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었고, 각 면의 아래에는 작은 공간에 무늬를 새긴 매우 드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상륜부...현재 옥개석 위에는 흔적만 남아 있지만, 연꽃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보주를 그 위에 올려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돌은 8각의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추녀에는 아래받침돌에서 보았던 같은 모양의 귀꽃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옥개석의 연꽃 문양...8엽의 연꽃문양이 새겨진 작은 받침돌이 옥개석 정상부에 남아 있다.

 

경사진 면은 가파르지 않고 부드러운데, 귀꽃조각과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옥개석의 귀꽃...현재는 거의 없어졌지만 8각 지붕 끝마다 귀꽃이 크게 얹혀 있다.

 

꼭대기에는 연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의 작은 받침돌만 남아 있다.

 

 

 

 

 

 

 

 

 

 

 

 

 

 

 

 

 

 

 

 

 

 

 

옥개석 밑면...옥개석 밑으로는 곡선과 직선의 부드러운 조화를 가지고 2단으로 굄돌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이 일부 탈락되긴 하였으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체적인 양식과 장식적으로 흐른 조각 등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개선사지석등(보물 제111호)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옥개석...옥개석은 8각형으로 되어 있고 밑면에는 2단의 옥개받침이 있다. 지붕 끝은 하대석에서와 마찬가지로 귀꽃으로 장식하였고, 낙수면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 귀꽃조각과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같은 절터내의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와 함께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화사석...화사석은 8각으로 4곳에 창이 나 있으며, 각 면의 아래 작은 공간, 긴 사각형의 액 속에 무늬를 새겨 넣었다.

 

 

 

 

 

 

 

 

 

 

 

 

 

 

 

 

 

 

 

 

 

 

 

 

 

화사석의 화창...네 곳에 창이 나 있고 직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매 창 아래에는 1구씩 안상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의 액자문양과 안상...화사석 각면 아래쪽에는 직사각형으로 액자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는 가늘고 긴 안상을 각각 1구씩 새겨 넣은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간주석...이 석등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둥처럼 서 있는 간주석을 중심으로 대칭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장구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장식적인 무늬로 화려하게 표현하였다. 기둥의 양끝에는 구름무늬띠를 두르고 홀쭉한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한 마디를 두었고,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꽃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3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간주석의 그름문양...간주석의 위, 아래 부분에는 구름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간주석의 연꽃 문양...간주석 중앙의 약간 비스듬히 가늘어지는 곳에 상하 대칭으로 연꽃문양을 조각하여 마치 장구의 몸통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간주석 괴임대의 구름문양...석등의 간주석 괴임대에는 조금은 화려한 듯한 구름문양이 동글동글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대석...4장의 사각형 지대석 위에 8각형의 하대석이 안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위로 2단의 기둥 받침이 귀꽃, 연꽃, 구름 문양 등으로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 귀꽃...석등의 하대석에 장식되어 있는 귀꽃의 모습이 장식적인 효과를 내며 돌출되어 있다.

 

 

 

 

 

 

 

 

 

 

 

 

 

 


 

 

 

 

 

 

 

하대석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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