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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개미왕국
Introduction (서문)

 

 

 

Evolution (진화)

 

생물을 취급하다 보면 진화라는 문제와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또한 생물의 진화를 만나면 인간의 진화문제와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나는 인류의 진화 방향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은데 그 중에는 생태적 진화나 육체적 진화 등 수없이 많은 방향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인간의 의식이 진화를 한다면 과연 어떤 과정과 방향으로 진화 되어 갈 것인가 하는 점이 관심의 초점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많은 우수한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의식이 확장되고 개선 되었으며 또한 파괴적인 사람들에 의해 몰락의 위기를 거치기도 했다. 이러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류는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 남고 있으며 만약 앞으로도 인류가 계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진화방향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또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현재의 인류는 전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환경오염이나 지구온난화, 기아문제, 전쟁과 테러 등 수없이 많은 문제점들이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나 과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이러한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인간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며 스스로 선택한 올가미에 걸려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경시하고 물질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참다운 성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물질에 의해 몰락할 것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넓게 보면 이러한 모든 문제의 해결기초는 인간의 의식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믿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의식으로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으며 악순환을 불러올 뿐이라고 생각된다.

 

Stagnation (정체성)

 

우리는 무엇이나 많이 알기를 원한다. 지식을 축적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운영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바로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심을 했다.
지식이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며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호랑이의 그림을 보고 호랑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어린이에게 물어보라! 너무도 호랑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어른들에게 물어보라! 오감을 통해 호랑이를 직접 보았다고 해도 호랑이를 아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관념이나 육체적인 오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개념이라도 덛붙여지지 않은 순수한 의식의 창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의식들은 모두가 이러한 지식과 개념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아이니컬한 말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의식의 투명성이 낮아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은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사회생활을 하면 자연적으로 쌓이게 되어있다.
지식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며 지식이 없으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중요한 점은 지식의 개념을 이해하고 앎과 지식을 구분함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개념에 얽메이지 말고 새로운 창조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세상과 사회가 이러하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이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앞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면 참다운 앎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 이 시대의 정체성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생물을 탐구함으로서 얻은 가장 중요한 내용은 우리가 현상세계에서 보고 느끼는 것의 대부분은 본질을 이루는 것들이 아니며 사회로부터 얻은 결과물에 의해 행동하고 사고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며 누구도 그것을 주장하거나 전달되기 어려우며 모든 것은 자신의 내부적인 문제로 남게된다. 하지만 인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호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며 혼자 그 무엇을 보았다 할지라도 사회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유형을 크게 분류하면 3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정보를 생산하는자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전달하는자이며 또 하나는 그 정보를 소비하는자이다. 생산과 전달, 소비간에 어떤 가치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의 기반을 형성하는자는 창조적인 생산자 일 것이다.

 

Coexistence (공존)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좀더 본질적인 면으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라는 것은 이세상에서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의존성은 상대방과 전체를 배려할 때 나의 입지가 동반상승하는 것이며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비하할 때 나의 입지가 동반하향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공존의 법칙이다. 생물을 취급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모든 생물은 상호 의존적이다. 사람들은 생물과 인간사회를 구분하여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도 생물이며 이러한 공존의 법칙에서 제외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제외시킨 생물의 탐구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자연친화적인 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개미는 개체로서 존재하기는 하나 집단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역할을 한다. 개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집단전체를 위해 이루어지며 개체 자신을 위한 행위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은 공존의 원리를 완벽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떠한가? 이러한 생물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욕심을 주장하고 상대방을 비하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운영자가 개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Communication (언어)

 

우리는 사물을 완전하게 통찰 할 수가 없다!
사물을 통찰하는 방법은 의식의 성장과 확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을 완전하게 통찰하는 방법은 이미 우리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의 개념으로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동양에서 고대로부터 비밀스럽게 전해 내려오는 신비체험이나 성인들의 행적을 보면 사물의 통찰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지식적으로나 마 조금은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영적 성장이 바로 그것이다. 영적인 신비체험은 오랜 역사초기부터 그 기록이 있었으나 인류가 진화하는 방향은 바로 이러한 신비체험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단순하게 무용한 신비로 내 팽개쳤던 많은 부분들이 서서히 인간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장 소중하게 여겨졌던 과학과 합리라는 도구들이 서서히 비과학과 비합리성 속으로 녹아 들어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적인 과학관은 이제 더 이상 고집 되어질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뉴튼 물리학이나 데카르트의 합리주의가 오늘날 모두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모든사람이 인정하는 절대적인 과학이었다. 그러나 과학은 변해 버린 것이다. 과학이란 변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고대의 성인들이나 영적 스승들은 깊은 의식의 세계를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서는 깊은 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사들이 도를 가르칠 때 침묵이 바로 언어임을 우리 모두가 안다. 침묵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며 선사는 수행자의 의식속에 들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성장한다면 바로 이러한 부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미 이러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나 과학적이라는 말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맹인도 색을 구분할 수 있다. 눈을 감고도 물체를 볼 수 있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의 행위를 알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나 물체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며 수천만년 전부터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최근 이러한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미는 화학언어를 사용하고 사람은 개념언어를 사용한다. 만약 사람이 위에서 설명한 새로운 통신방법을 현재의 언어로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운영자는 이를 제3의 언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운영자는 개미의 생태를 쫓는 사람이 아니며 그 이상의 무엇을 보고자 희망한다.


 

 

생명의 본질

 

개미세계를 관찰하다보면 가끔 깜짝, 깜짝 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개미세계를 관찰 하듯이 우리 인간을 관찰하는 또다른 어떤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것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해결을 찾고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외계인, 무속인, 심리학, 동양의 신비언어 등에서 찾고자하는 사람 등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내용이 너무나 천차만별입니다. 이러한 다양성들이 이세계를 존재하게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닌가 항상 생각합니다. 비록 하찮은 곤충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하거나 거만한 자세에 대한 경종의 종이 항상 저의 뇌리를 두드립니다. 우리는 좋고 나쁨을 떠나 항상 모든 문제를 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속에 같혀 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자신을 버릴 때 새로운 진실들을 만날 수 있으며 닫혀진 마음의 상태에서는 어떠한 것과도 조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으려면 항아리가 비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쭘은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을 하기도 하고 부모형제에 대해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감정을 자세히 관찰해 본다면 그 속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까요?  이 속에 모든 생명현상의 본질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모든 생명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랑을 잊어 버렸다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단순히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현상은 하나의 관계와 흐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세상의 모든 만물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형화된  물직적이고 형상화된 세상으로 보일지 모르나 본인이 바라보는 관점은 오직 하나의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속에는 오직 흐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이라는 것, 또는 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말을 좀더 쉽게 설명 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진실은 누구나 죽게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죽음이 던져주는 뜻은 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며 내부적으로 보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내부적인 문제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갖는 마음과 의식의 질서이다. 질서는 평온을 가져다 준다. 평생동안의 삶이 갈등으로 가득하다면 그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과도한 욕심과 애고를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공존의 개념을 깨닫는 일이고, 나아가 사물의 존재방식에 대한 질서와 흐름에 대해 이해를 갖는일 일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죽음의 문턱에서 평온함을 얻을 때 그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이러한 흐름과 질서가 운영자가 찾고자하는 내용입니다. 개미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주었다.
함께 나아 갑시다!

 끝.


꼬마 니콜라 엔젤아이 백씨네박씨네 손끝으로 만드는 행복 와이에이치j21 내 손으로 만드는 인형 칼리스타 구두패션연구소 건축의 끝 사탕베게와구름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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