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호

발행일 : 2001년 10월 29일

책임감수 : 천리포수목원 ( http://www.chollipo.org)


무궁화 5 : 하나의 나무에 3천 송이의 꽃을 피워

글과 그림 :고규홍 ( gohkh@solsup.com )
 
 



 

임하 댐 건설로 수몰 위기를 맞았던 용계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175호인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15미터를 들어올리는 공사를 했는데,
이때 들인 비용이 무려 20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용계리 은행나무. 2001. 10. 21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의 천연기념물 제175호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형님의 고향이 이 부근이어서, 해마다 가을이면 한번 씩 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올해도 '송이버섯'이 나올 즈음에 이곳을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왕 나선 길, 영주, 안동, 봉화, 예천 지역의 좋은 나무들을 찾아보리라 마음 먹고,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의 자료를 찾아보고, 떠났습니다.

사진 장비를 들고 길을 나설 때마다 가장 먼저 따져보는 것이 날씨입니다. 빛이 좋아야 사진 상태가 좋게 나오니까요. 이번 나들이는 벌써 한달 쯤 전부터 날을 잡은 것이고, 동행하신 두 분의 형님들이 워낙 바쁘신 분들이어서, 날씨를 변경할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길을 나서는 아침부터 날씨가 흐려 안타까웠습니다.


'석송령'과 함께 토지세를 꼬박꼬박 물고 있는 팽나무.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00호입니다. 2001. 10. 21


천연기념물 나무들은 대부분 깊은 골짜기에 들어 있어서,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용계리의 이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우선 35번 국도를 타고 길안읍으로 가다가 길안읍 삼거리에서 914번 지방도로로 좌회전 하여 재를 하나 넘고 왼쪽으로 약 8킬로미터 정도 더 들어가야 합니다.

비포장 길을 가야 하는데, 용계리까지 가는 길의 가을 분위기도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이 길은 지례예술촌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멀리서 봐도 벌써 알아볼 듯한 큰 은행나무의 자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혀 과장하지 않고, '헉' 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잘 생긴 은행나무가 멀리서 나타났습니다. 임하 댐의 상류인 이 곳의 나무는 참으로 칙사대접을 받고 있는 나무였습니다. 오로지 이 나무 하나를 위해 댐 건너편에서 그 나무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의 고택 뒤란의 감나무. 2001. 10. 22


이 은행나무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나무가 물에 잠기게 될 뻔한 사연을 갖고 있지요.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90년부터 94년까지 3년 5개월에 걸쳐 원래 나무가 있던 자리에 흙을 북돋는 상식 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 위치보다 15미터 높은 현재의 위치로 올라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공사에 들인 비용이 자그마치 20억원이라고 합니다. 나무 하나를 살리기 위해 들인 돈으로서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높이 37m, 가슴 높이둘레 15m인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 현재 살아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굵은 나무라고 합니다. 전체적인 수형은 매우 아름다운 것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상식 공사 과정에서 가지가 많이 잘리고, 건강 상태도 많이 나빠져서 안타깝게 합니다.

약 7백 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살아 있는 이 나무는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인 탁순창(卓順昌)공이 고향에 돌아와 처음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탁순창 공은 이 나무를 보호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은행나무계를 만들었으며, 이때부터 해마다 이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노래
- 리진


인천 남동구 장수동의 은행나무. 나이가 무려 8백살이 된다고 전합니다.


저 나무가 달마다 해마다
점점 더 높이 솟으며 나를 사랑해주듯
너도 나를 사랑해다오
날로 더 높이 높이

저 나무가 땅속 깊이 깊이
보이지 않는 부리를 억세게 벋어가듯
너도 나를 사랑해다오
시시각각 더 깊이

저 나무처럼 봄이 오면 연두보라 반가운 새싹으로 나를 맞아주고
여름마다 자줏빛 그늘에서
꿈을 더듬게 해다오

저 나무처럼 가을마다
마지막 불길로 내 가슴을 불살라주고
너와 나만 아는 노래를
나목의 오열로 불러다오

저 나무가 벌써 여러 해
높이 깊이 사랑하면서도 강샘을 모르듯
그리 너도 너그러워다오
피할 수 없을 이별의 뒤에도


함경남도 함흥 출생의 망명시인 리진 님의 노래였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사람보다 훨씬 더 오래 이 땅을 지키고 살아갈 나무들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참 좋아했었던 은행나무는 2억5천만년 전부터 지구 상에 자리잡았다고 전합니다. 요즘은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오래된 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천시의 근처인 인천 남동구 장수동에도 8백살 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건강상태가 아주 좋은 멋진 나무입니다. 어찌 보면 마치 근육질의 동물성 생물을 보는 듯한 기괴한 분위기의 장수동 은행나무도 멋진 은행나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위에 보여드리는 용계리 은행나무는 하늘로 치솟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온전히 건강을 회복치 못해 그리 무성한 느낌이 없었습니다만, 장수동 은행나무는 8백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지마다 촘촘히 잎을 달고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여서 더욱 놀라웠습니다.

하나의 나무에서 삼천송이의 꽃이 피어나


무궁화 '불새'. 수원 임업연구원 무궁화 품종보존원. 2001. 8. 11


중국 당나라의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얻기 위해 전국의 꽃이란 꽃은 다 모아, 궁궐 안에 심었다고 합니다. 봄이 되자 궁궐은 꽃의 천국을 이루었는데, 유독 무궁화만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현종은 화가 나서 이 꽃을 모두 뽑아 궁궐 밖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궁궐 안에서 무궁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무궁화를 한문으로 無窮花로 써야 하는지, 혹은 無宮花로 써야 하는지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만, 無宮花로 쓰는 것은 위의 당나라 현종의 이야기와 관계된 이야기인 듯 합니다. 無窮花라고 쓰는 것은 이 꽃이 끝도 없이 무궁하게 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 우리가 더 많이 쓰는 이름이지요.

무궁화는 무궁화과 혹은 아욱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 가운데에 무궁화 속에 속하는 식물로는 무궁화 외에 황근과 부용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는 300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무궁화는 한대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전 지역에서 잘 자랍니다.


무궁화 '사임당'. 수원 임업연구원 무궁화 품종보존원. 2001. 8. 11


워낙 다양한 무궁화의 생김새를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기본형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무궁화 꽃은 꽃잎이 5장, 꽃받침이 5개, 암술 머리가 5개 있습니다. 꽃받침과 꽃잎의 끝은 모두 붙어 있으며, 꽃받침 밑에는 부꽃받침 7~8개가 있습니다. 수술은 원통 모양의 수술통에 모두 합쳐져 짧게 붙어 있으며 이 수술통이 암술대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무궁화는 초여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초가을까지 계속 피어납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이 무궁화의 꽃은 대부분 하루에 20~30 송이를 피워 올리는데, 그렇게 100일 정도 계속 꽃을 피우니, 해마다 무궁화는 하나의 나무가 3천 송이의 꽃을 피운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워낙 종류가 다양한 무궁화 가운데에는 한해에 1천 송이 정도 피우는 것도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의 나무가 한해에 피워 올리는 꽃의 수로는 가장 많은 나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무궁화 '산처녀'. 수원 임업연구원 무궁화 품종보존원. 2001. 8. 11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무궁화가 많이 있었습니다. 단군 개국 때부터 무궁화가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안에서 무궁화의 자생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화 벚꽃의 자생지를 일본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겁니다. 자생지가 확인되지는 않지만, 옛부터 우리나라 안에서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자생지가 인도인 외래종이라는 까닭은 한 때 나라꽃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궁화는 생울타리로 쓰이는 등, 거의 방치 상태로 재배되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도 그 보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대 농대에서 새로운 품종을 선발하면서부터 우리 식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평화, 옥토끼, 눈보라, 산처녀, 첫사랑, 파랑새, 수줍어, 일편단심, 신태양, 늘사랑, 한사랑, 한보람 등은 우리나라 재래종 또는 외국도입종과의 자연방임 수분에서 얻어진 실생으로부터 재선발하여 이름붙인 것들입니다.


무궁화 '새한'. 수원 임업연구원 무궁화 품종보존원. 2001. 8. 11


1972년에는 제1회 무궁화 전시회가 열렸고, 이때부터 우리의 고유한 품종 명이 붙여지는데, 대부분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과 정서를 나타내는 낱말들이 붙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친근한 사람 이름에서부터 땅 이름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들이 사임당, 춘향, 아랑, 아사달, 아사녀, 향단, 한서, 진이, 소월, 계월향, 설악, 임진홍, 서호향, 화홍 등입니다.

이후 차츰 무궁화에 이름 붙이는 작업에도 전문성을 꾀하게 됐고, 1985년 한국무궁화연구회가 결성됐고, 90년 총회에서는 기존의 육성품종 중에서 외국도입품종과 특성이 같아서 사실상 구분이 어려운 종류들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이름을 통일하여 부르기로 했는데, 일편단심(Pheasant Eye), 한사랑(Mauve Queen), 첫사랑(Ardens). 늘사랑(Speciosus Plenus), 한보람(Mimihara Hanagasa), 산처녀(光花笠)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울러 외국도입품종 중 오래 전에 도입된 것들 중 우수 품종들은 부르기 쉬운 우리 이름으로 다시 붙였는데, 대덕사(大德寺花笠), 대덕사백(大德寺白), 무지개(七彩, Rainbow), 자옥(紫玉) 등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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