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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비로소 봄비 다운 비가 오다.

제법 많은 큰 덩어리의 일들이 지나간 한 주가  꺾여진다.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 일이 아니라 하루 중 몇 시간을 집중하고 나면

일과 시간이긴 하나 포스트 쓸 여유 정도는 있다는 게 괜찮은 건지

아니면 그저그런 일자리인지 판단의 몫은 아닌 듯하다.

일없어 힘 없다는 젊은이들 생각하면 참으로 매맞을 일이긴 하나,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일이라는 걸 하다 보면 또다른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이 다들 그렇게 우호적이고 의욕적인 것들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있는곳이면 예외없이 존재하는 시기와 타인과의 차별화가 오로지

지위 높은 이들과의 친,소 정도로 존재의 의미를 더해 줄거라는  세상살이를

터득해가는 이들 속에 속하지 못한  못난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조금씩 그들을 닮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좌절이나 포기라는 단어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바닷가 벼랑과도 같은 것이다

그간에 겨울과 봄을 왔다갔다하며 봄비아닌 겨울눈이, 겨울눈 아닌 봄비가 사람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더니만 오늘은 제법 봄비다운 비가 조용조용 하루를 적신다.

그다지 찬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감정이 차분해지는 봄이라는 말이 떠올려진다.

나는 이런 날이 커피가 많이 땡기는 분위기인데...

찾았던  제주 시내에 있는 아담한 커피집의 분위기가 스친다.

커피도 담백하고 깔끔하게 내려 줄 뿐더러 슬그머니 또 한잔을 공짜로 내놓는 그 정이 더 맛나더라.

넓은 창과 도심 속 산기슭의 조용함,그리고 귀가 많이 예민해지는 하이엔드 오디오도 그렇고

문을 나서면 바로 서리가 가능하고 말리는 이도 없는 철지난 귤,한라봉 밭이 인상적인 곳

이*하우스 그집의 비오는 날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다.

쨍하늘을 기대했건만 우울하게 시작한 서귀포 길은 차를 달려 숙소에 닿을때까지 우울했던 기분은

시간의 흐름을 좇아서 날씨와 관계없이 밝아지더라.그게 제주의 힘인지는 모르지만...

어우러져서 어느 곳 하나 겨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그 곳.

머리 속에서 떠올려지는 첫 단어는 일본처럼 깨끗하구나와

미국의 시골에서도 같은 느낌을 찾을 수 있는 숲은 원시림에 가깝네라는 혼자만의 마음의 울림이겠지

 

곳이 기억에 남더라.물론 바람나라 속의 마라도는 맑아진 날씨 덕분에 참으로 귀한 추억이라는 걸 얻을 수

있었고, 그래도 코스관광 일번지 중 하나인 성산일출봉 밑에서의 촌스러운 말타고 걷기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그곳에서 똑같은 말타기를 했던 기억에

이번에 세번째 제주행임을 알게되었음. 아내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 그 기억이 말등에 오르는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더라. 그때도 여비가 넉넉지 않아서 아내는 타지못하고 아이와 나만 했던 말타기...

참으로 추억의 놀이였다.. 말주인의 사진찍기 솜씨도 아마추어 수준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진속의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기억 속에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길에 꼭 보고 싶었던 안도타다오의 글라스 하우스를 기억속에 담아 온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물론 나는 건축이란 걸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재주는

아예없지만,그가 건축을 혼자 독학으로 깨우쳐서 롯본기의 아파트를 설계하면서부터 시작한 건축의 세계가

전세계의 사람들 기억속에 세멘트의 거칠지만 자연스러운 미학을 일깨워준 손가락에 꼽히는 명성을  

가진 이의 작품이라 그냥 보고 싶었다. 섭지코지의 민등벌판 거친 바람과 칙칙하고 희뿌연 기운과 조화를

이루는 회색과 단순함과 거침과 차가운 절제가 혼재한 그의 건축물을 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새롭다.

 

무언가를 알아갈수록 조금씩 단순해지고 또 단순해지기를 배우는 것이 무언가를 알게되는 건지는 모를일이지만

이제 겨우 세번째인긴 해도 그곳의 속살을 알아가는 재미가 여행의 또다른 길이려니 여겨지는 건

나만의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헤메지않고 단촐하게 머리속을 맑은 기운으로 채울 수 있었던 곳들..

 

굳이 이중섭 미술관을 이틀이나 찾게 되는 건 그이가 그토록 배고파 게잡아먹으면서 견디어 내야했던

연민과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 곳 부근의 분위기가 너무도 소박하고 인간적이어서 여행지라기보다는

마치 성지같은 곳이기 때문이리라.나무도 돌도 초가집도 이미 꽃망울진 목련도 모두가 합쳐저서

한점의 그림이었고 게다가 그길에 자리한 갤러리카페 미루나무는 옛적 우리들 기억속의 학림다방보다

더 진한 향수를 간직한 마루방 커피집이더라.아쉽게도 문닫은 시간이라 차한잔 할 수없었음이 미련으로

남는다. 다음에는 꼭 들어가 보리라.

 

그 곳에서 가까운 바닷가의 이름난 식당에서의 갈치국은 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서의 마지막 기억속

그 맛  그대로의 우거지,호박의 맑은 국물을 되새기는 옛맛 옛모습 그대로더라. 모두들 오분작 뚝배기를

주문하지만 난 오로지 갈치국만이 머리속에 박혀 있어 주저함없이 아내의 마치 야만인 보는 듯한 느낌도

모른척 주문했다(눈치는 그 비린내나는 어떻게 국으로라는 눈치....)

어떻게 갈치로 국을 끓여 먹는가 의아하면 시도해보고 그 맛을 느껴보기만해도 단박에 알 수 있다...해장국???

설명 필요없고 일단 맛을 보면 아마도 빈말이 아님을 깨우치게 된다. 우리말로 시원하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

 

올레는 잘 모르지만 산방산 밑의 해변길을 올레길 걷듯 둘이서 제주해안길을 걸었다. 생각하는 정원을

가는 길에 만났던  바닥에 떨어진 귤을 스릴있게 서리했던 귤밭도 그렇고 조용한 제주 시골길가의 비슷비슷 모습들도

대부분 닮아 있어 호텔데스크 아내 청년의 말대로 특별히 올레라 고를 필요 없고 그저 걸으면 된다는 말이 맞다.

매우 인상적인 일이라고는 죽은이의 무덤도 사람들이 사는 곳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더라.

생각하는 정원은 설명 필요치 않고 그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숙연해지고 생각하게 되는 정돈된 정원이라

인상 깊었던 서향나무의 향수보다 더 은은하고 깊은 향기는 아직도 코끝을 떠나지 않고,스스로 안정되어 가는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고,무엇보다 칠천오백원으로 즐길 수 있는  깔끔하고 맛나는 자연식 뷔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지금

참으로 대접받고 있구나라는 진정한 여행의 상쾌함을 느끼게 하더라.

 

제주사람들에게는 걷기 적당하고 산책길로 적격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할 수도 있는

서귀포자연휴양림과 비자림의 원시림은 설명으로는 부족한 마음속의 고향을 안겨준 참으로 소중한 곳들이다.

다시 제주를 찾게된다면 나는 다른 곳 다 제치고 그 두곳을 완벽하게 걸으며 느껴보게 될 것이다.

몇해전 아이가 있는 네브라스카주에 있는 폰트넬 숲이라는 원시림에서 알게 되었던 건강한 모습과 보존의 소중함을

우리 땅 제주에서도 볼 수 있고 발견하게 된다?

조용하고 단촐하고 깊고 크고 겸손해지는 한라산 기슭의 자연숲은 여타 산속에서 느껴온 기운과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처럼 가져다 주는 곳이다.

 

그 모든 기억들이 머리속에 남아있고, 바람이 마음을 열게하고, 마음이 그 바람으로 몸뚱아리보다 더 정결해지는

그 온기가 나는 좋더라. 그러고 보면 이제 따뜻한 것만 자꾸 찾게 되는 그런 여린 인간으로 진행중인지도 모르지...

 

지난 삼일절 아침에 형수께서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제아무리 의사이지만 참으로 몸이 성하지 못함을 알아차리는 재주는 보통인이나 매한가지다.

그래도 그건 못된 것들 중 아주 순한 부류니까 잘 견대어 내시고 빨리 쾌유하길 간절 기원한다.

아직 아이들이 커가는 중이니 다 자라서 제가 설때까지는 마음속의 상처가 없어야하므로 더더욱 굳게 일어서시길...

그리고 꼭 그리 되리라 믿자.

비로 인해 날은 더 빨리 저물고 어두운 안식이 제자리를 찾아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이렇게 저렇게 각자의 사연을 담은채 시간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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