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오면 꼭 걸어보고 싶었던 길이 있었다

며칠전 경기도 화성위치한 '궁평항'의 일몰이 목적이어서 찾아가게 되었는데 문득 이 길이 떠올라 잠깐 들렀다

숲이 우거져 산림욕 하기에 좋은 길이지만 이곳에는 화성 문화재 사적 제206호로 지정된 2개의 (융릉과 건릉)이 있어서 꼭 둘러볼 만하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끊어 안으로 들어가니 산책로 안내도가 먼저 보이는데 코스별로 자세히 나와있어서 참고하면 좋을듯

 

A코스길(1->3) / 2.48Km / 45분 소요

B코스길(4->5) / 1.71Km / 26분 소요

C코스길(1->2->4) / 3.04km / 50분 소요

※ 산책길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 이용기간 : 5.1~11.30일(매주 토·일·공휴일)

 

 

화재예방을 위해 산림산책로는 5월 15일까지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융·건릉에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물론이거니와 잣나무, 보리수나무, 조팝나무, 무궁화,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홍작살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각별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소나무와 잣나무에 발생되는 재선충병 예방을 위해 수간주사(농약)을 실시하였으므로 솔잎을 채취하거나 씹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안내도를 보고 먼저 < 융릉 >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다른 이는 아무도 없다

 

걷기에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3분 정도 내려가니 '융능교'가 보이고 저만치 '융릉'이 보인다

 

홍살문 정면으로 제향(祭享)을 지내는 정(丁)자 모양을 한 < 정자각 >이 보이고, 왼쪽에는 제물을 준비하는 < 수라간 >이 있으며,

우측의 작은 건물은 비를 안치하는 < 신도비각 >이다 

대개의 왕릉에서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축을 이루지만 융릉은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좌측 신도(神道)와, 우측 어도(御道)로 구분하였다

정자가 아랫단 왼편까지 넓게 반석을 깔았다

 

 

융릉(隆陵)은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1735-1762)'와 그의 비인 현경왕후 '혜경궁 홍씨(1735-1815)'의 합작릉이다

장조는 조선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로 1735년 창경궁에서 태어나 영조 12년(1736)에 왕세자가 되었고, 영조 20년(1744) 10세에 혼인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3세가 되었을 때 「효경」을 외울 정도로 다방면으로 왕세자로서의 면모를 갖춰 부왕인 영조의 신임을 크게 얻었지만

영조 25년(1749)에 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의 무고에 의해

영조의 미움을 사게되어 영조가 세자에게 자결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자가 명을 따르지 않자 폐서인한 후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숨을 거두게 하였다

이 때 세자의 나이 28세였으며, 영조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애도하는 뜻에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垂恩廟)라 하였다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莊獻)'으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광무 3년)에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장조의 무덤은 경기도 양주 배봉산(현재의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고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뒤 능호를 '융릉'으로 높였다

현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영조 20년(1744)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장조가 세상을 떠난 뒤 혜빈 정조 즉위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고

뒤에 사도세자 장조로 추존되면서 현경왕후에 추존되었으며, 남편의 참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맣은 일생을 자서전적인 사소설체로 적은 「한중록」을 남겨

궁중문학의 효시가 되었다.  순조 15년(1815)에 창경궁에서 8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융릉은 동·서·북 3면에 곡장(曲牆)을 두르고, 봉분은 모란과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은 생략되었다

방위 표시를 위해 병풍석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인석(引石)에 문자를 새겨 넣었으며, 봉분 바깥으로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을 각각 2기씩 배치하였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는데, 추존 왕릉임에도 무인석까지 배치한 점이 중요하다

정자각 뒤로는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예감'이 있으며, 제향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망료위' 등의 부속시설이 있다 

 

 

융릉 근처에는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인 1790년 풍수적 원리에 의해 조영되었다는 원형의 연못 < 곤신지(坤申池) >가 있다

곤신방(坤申方, 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生方: 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곳이기 때문에 판 연못이다

 

그림자 길게 드리워진 흙길을 맨발로 걷고 싶지만 너무나 추운 날씨여서 엄두조차 낼 수가 없다 

 

햇살이 살포시 들어오는 봄날, 무성하게 자란 나무 아래 앉아서 사색하기 딱 좋겠다   

 

또 가른 길로 들어가봤는데 이곳에도 유독 소나무가 많다

우리 옛 선조들이 흉년이 들어 먹을거리가 모자랐을 때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고, 꽃가루를 털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한다

좋은 소나무는 임금님의 나무널로 쓰였으며, 오랫동안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쓰임이 많았던 나무지만, 숲이 우거지면서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 밀리고 재선충을 비롯한 병충해가 많아 이 땅의 소나무는 차츰 줄어들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니 건릉과 융릉의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은 융릉으로 향하는 길이며

 

이쪽 좌측길로 내려가면 '건릉'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나무사이로 건릉의 정자각이 드러나보인다

 

 

건릉(健陵)은 정조(1766-1800 : 재위, 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가 묻힌 곳이다

장조의 아들인 정조는 1759년(영조 35년)에 세손에 책봉된다.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추존)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잇는다. 1775년(영조 51년) 연로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하였고, 영조가 승하하자 1776년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세자가 당쟁에 희생되었기에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영조 이래의 기본정책인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여 새로운 혁신 정치를 펼쳤다

또한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로운 활자를 만들었으며, 「속오례의」「국조보감」「대전통편」「증보동국문헌비고」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간행했다

재위기간은 정조의 학문적 소양에 터전한 적극적인 문화 정책의 추진과 선진문화인 중국의 건륭(乾隆)문화의 영향 등으로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이루어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루었다. 재위 24년(1800) 49세로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효의왕후는 청원부원군 김시묵의 딸로 1762년(영조 38년) 세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1821년(순조 21년) 69세로 창경궁에서 승하하였으며 시호가 효의(孝懿)가 되었고, 광무 3년(1899) 황후로 추존하였다

 

 

 

건릉은 동·서·북 3면의 곡장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다른 상설내용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망주석과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들을 배치하였다

또한 융릉에서처럼 제향을 지내는 정(丁)자 모양을 한 < 정자각 >이 있고, 정자각 뒤로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묻는 사각형의 석함인 < 예감 >,

비를 안치하는 < 비각 >,  제물을 준비하는 < 수라간 >, 제향 후 축문을 태워 바라보는 곳인 < 망료위 > 등의 부속시설이 있다

    

 

건릉으로 향하는 길에는 전국 산기슭이나 산중턱에서 많이 자라는 '떡갈나무'와

종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 '때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봄에 꽃필 무렵 다시 와서 보고 싶다   

 

두 능을 둘러보고 나니 45분 정도 소요되었다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머물러 있기에는 이른 계절이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45분이지

숲의 기운을 느끼면서 즐길 수 있는 봄 나들이 코스로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여유두면 딱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산책로 통제구간이 있기에 5월에 가면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안내 

        하절기(3월~10월): 오전 9시~오후 6시 30분 / 동절기(11월~2월): 오전 9시~오후 5시 30분(매주 월요일 정기 휴일)

    ▶ 관람료 : 대인(1,000원_단체 20인 이상 800원) / 소인(500원_단체 10인 이상 400원)- 대·소인 합하여 20인 이상 단체 할인 

    ▶ 찾아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병점역에서 하차후 시내버스로 환승(24, 34, 34-1, 35-1, 50번 버스)

    ☎ 문의 : 031)222-0142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87-1번지

 

    ※ 융릉관리소<http://hwaseong.cha.go.kr/index.html>

    ※ 화성문화관광 <http://www.hscity.net/tour/index.jsp>

    

 

 

※ 궁평항 포스트<http://blog.naver.com/milletart/60987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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